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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Dec 26, 2019
In Act
“TIME FOR ACTION”, 제25차 당사국총회(COP25)의 슬로건이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이 2019년 올해의 단어로 기후비상(climate emergency)을 선정하고, 전 세계 과학자 1만 1000명이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한 만큼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가 극명 해졌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는 이 시점에서, COP25는 여느 해보다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했다. 지난 해 합의를 보지 못한 파리협정 6조 등을 올해 재논의 하면서 신기후체제 세부 이행지침(Rule book) 마련에 마침표를 찍을 것인가가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COP25의 개최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당초 COP25를 개최하기로 한 브라질은 재정 문제와 정권 교체 일정 등으로 개최 의사를 철회했다. 이후 개최국이 칠레로 변경됐지만 국내 반(反)정부 시위사태 확산으로 인해 총회 한 달 전 개최를 포기하고 말았다. 올해 처음으로 COP 참관단을 구성한 빅웨이브에서는 적잖이 당황했고, 한국관 세미나 운영은 커녕 COP이 정상적으로 개최 될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예약된 비행편과 숙소를 줄줄이 취소하고 유엔과 환경부의 공식 브리핑이 있기까지 일주일 가량 발을 동동 굴렸다. 다행히 스페인의 발 빠른 지원 덕분에 전체 일정 변화 없이 총회가 준비됐고 우리는 12월 5일 마드리드로 떠났다. 개최국 스페인의 섬세한 배려 마드리드 곳곳에서부터 COP25 홍보물이 보였다. 장거리 비행에도 불구하고 기쁜 마음에 매우 들떴고, 다음날 행사장 입구에 들어서자 전광판에서 TIME FOR ACTION이 멋있게 빛나고 있었다. 맞은 편에는 풍력 발전기 블레이드(날개) 하나가 전시돼 있어 굉장히 인상깊었다. 보안검색과 참가자 등록을 마친 후 행사장에 들어서자 마자 소규모 시위가 한창이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지금 당장 행동하라며 뜨겁게 “ACT NOW”을 외치는 모습이 COP25에 대한 첫 인상이다. 의장국은 칠레가 유지한 채, 자매국인 스페인에서 총회를 정상 유치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준비한 것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손색이 없었고, 오히려 행사장 곳곳에서 섬세한 배려가 느껴졌다. 참가자에게 나눠주는 유리 텀블러, 휴대용 대나무 식기세트, 무료 교통권은 물론, 종이박스로 만든 분리수거함(회의장 앞에는 특히 종이 분리수거함이 많은 것이 인상깊었다), 동선을 고려한 행사장 배치(사이드 이벤트-국가 홍보관-협상장 순) 등등 스페인에게 크게 감동했다. 꼼꼼한 결정문 체크? 시간이 없다! 우리는 올해 쟁점사항인 파리협정 제6조를 중점적으로 follow up 하기로 했기에 가장 먼저 6조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 하지만 1주차가 끝나갈 무렵이기도 했고 앞선 회의 안건을 숙지하지 못한 상황이라 참관단 모두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간의 draft들을 읽으며 다음 회의를 참관할 준비를 했으나 생각보다 합의된 사항이 많지 않았고-합의가 필요한 부분은 대괄호가 쳐있다- 다음 회의에서도 진전이 없어 의장이 매우 격분한 모습을 보였다. 대다수의 회의들은 일정이 30분에서 1시간으로 굉장히 타이트하게 짜여 있었다. 즉, 짧은 시간 내에 효과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다른 회의를 지연시키거나 소득 없이 휴회를 맞게 된다. 그런데 특정 국가들이 20분씩 발언대를 붙잡고 A to Z로 조항 하나하나에 불만사항을 제시하는 등 협의를 지연시키는 일도 많았다. National Adaptation Plans 회의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마침 최종 결정문을 합의하는 자리였다. 아프리카의 한 국가가 특정 조항의 내용을 강조해야 한다며 ‘stress’를 추가할 것을 제안했고 이에 대해 십여분 넘게 선진-개도국 간 공방이 펼쳐졌다. 결국 ‘emphasize’를 넣기로 했으나 핵심 줄기를 합의 한 상황에서 잔 가지를 그리기 위해 소모되는 시간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됐다. 특히 시장 메커니즘과 관련된 6조 협상은 개회조차 수없이 미뤄졌고, 겨우 개회된 심야회의에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당사국들의 요청에 의해 1시간 가량 휴회가 선언된 바 있다. 바로 옆 회의장에서 SBI와 SBSTA closing plenary가 진행되는 가운데 SBSTA contact group 회의가 진전 없는 모습을 보며 허탈하게 귀가한 기억이 난다. 올해 가장 주목받았던 6조는 또다시 합의를 보지 못한 채 COP26으로 안건이 넘어갔다. 같은 공간,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들 이렇게 느리게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협상장 밖에서의 시간은 꽤나 빠르고, 다양하게 흘렀다. 사이드 이벤트들을 둘러보면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 출신의 연사자들이 호소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곳의 사람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생명을 잃어가고 있으며 서둘러 대응해야 한다고 절박함을 외쳤다. 국가 홍보관을 둘러봐도 선진국들은 재생에너지 달성 목표량을 자신 있게 내걸어 놓고, 자체 카페를 운영해 사람들을 머물게 하는 등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개도국 중에는 개최지가 변경되며 재정 문제로 홍보관을 운영하지 못하는 곳도 부지기수였고, 넷제로 달성과 같은 이슈에는 힘쓸 여력이 부족함이 느껴졌다. 특히 태국이 인상깊었는데 현재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국가 중대사안이다 보니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플라스틱 소비 절감이 급선무였다. COP 행사장 밖에서의 시간도 다르게 흘렀다. 마드리드 시내에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골목마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대형 전광판에는 밤낮으로 우리나라 기업의 광고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무언가를 소비하기 위해 끊임없이 매장 앞에 줄을 서곤 했다. 온 종일 행사장 안에서 기후위기를 외치던 우리(혹은 나 자신)도 시내에선 일반 대중처럼 소비하는 모습을 발견하며 이질감을 느끼는 불편한 시간도 마주했다. 결국 TIME FOR ACTION은 마드리드 안에서 조차 다르게 흐르는 시간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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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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