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의 ' 내일(Tomorrow) '을 꿈꾸는 여행, 에너지를 ' 나의 일(Problem) '로 고민하는 여행, 에너지내일로가 시즌2 로 돌아왔습니다. 2018년 8월 시즌1이 끝난 이후 무려 2년 만인데요. 그동안 많은 활동들이 있었지만 '에너지내일로'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높았기 때문에 시즌2를 기획하지 않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을 선명하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환경일보 르포기사에 앞서 그동안 진행된 에너지내일로 시즌2 준비과정을 돌아보고 내년 그리고 내후년에도 계속해서 에너지내일로 프로젝트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족한 글솜씨지만 몇 자 써내려가겠습니다. 기획단 구성 후 104일 동안의 준비기간, 참여하는 22명의 빅웨이브 멤버들, 5박 6일 여정동안 방문한 15곳의 지역, 그리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잊지 못할 에피소드들까지.. 어떤 활동보다 풍성하고 다채로웠던 에너지내일로 시즌2를 회상해볼게요.
에너지내일로 시즌2 기획의 Tipping Point 2년이라는 시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드라마틱한 변화들을 제게 가져왔습니다. 나이의 앞 숫자가 바뀌고, 생각지도 못한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빅웨이브가 성장한만큼 현재 위치에서 느끼는 무게감도 커졌죠. 사실 작년에 에너지전환포럼과 공동으로 추진했던 '에너지전환 청년프론티어 1기' 활동 전후로 해서 시즌2를 계획하였으나, 아쉽게도 생각에서 그치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작년이 아쉬움 때문인지 해외 유학을 앞둔 진수가 자원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그 맘때쯤 mysc에서 에너지 문제정의 플랫폼으로 협력을 제안했을 때 감사함이 컸습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어서 큰 동기부여로 다가왔던 것이죠. 자연스럽게 욕심이 생기고 이런저런 일을 많이 벌렸지만 해낼 자신이 있었습니다. 협력사업 발굴, 영상 촬영, 후원요청 등등 에너지내일로 시즌2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기획에 몰두했죠. 언제나 그렇듯 여행은 계획했던대로 이뤄지는 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각자의 관심사를 최대한 존중하고 컨센서스를 이루는 의사결정방식 때문에 진행이 더뎠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고진감래( 苦盡甘來) , 도움의 손길과 함께 파타고니아 티셔츠를 보면 제조과정에서 얼마만큼의 용수와 탄소배출을 절감했는지, 플라스틱을 얼마나 재활용했는지 등 어떻게 만들었는지 자세히 적혀있습니다. 일일히 이것들을 측정하고 분석하고, 협력업체와 공급사까지 이를 요구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겠죠. 환경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제품의 품질을 최고로 만들기 위해 현실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고집스러움이 있었기에 우리는 믿고 티셔츠를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의실을 벗어나 현장에서 현실의 문제를 깨닫는 것, 서로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오버투어리즘을 지양하며 친환경 여행을 실천하는 것, 그래서 이 세 가지 목적을 모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까요. 복잡한 운영방식을 해결하느라 어떻게 조사를 하고, 어떤 질문을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는데 mysc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것이 가능했습니다. 그것이 진짜 문제인지, 문제가 어떤 이해관계를 갖는지, 그 속에서 문제는 어떻게 정의되는지 구체화하는 과정을 통해 관성적으로 문제의 솔루션을 먼저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우여곡절 끝에 에너지내일로 시즌2는 이렇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일자별로 방문한 지역과 그곳에서 멤버들이 경험했던 이야기는 환경일보에 르포 형식 기고문으로 올라갈 예정이에요. 그 전에 개인적으로 느꼈던 소회라고 해야할까요? 제가 얻은 인사이트를 공유함으로써 앞으로 나올 기사를 보실 때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Insight 1 : '주민수용성' 문제에 대해.. 시즌2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민수용성 문제가 왜 발생하는 지에 대해 나름의 확신을 얻었습니다. 재생에너지를 목적으로 생각하는 사람과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 간의 차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국가의 입장에서는 온실가스 감축과 재생에너지 보급이 목적인 반면, 주민들 입장에서 재생에너지는 삶을 윤택하게 살아가기 위한 보조적/선택적 수단이 될 수도, 어떤 경우에는 경제적 자립 또는 생존을 위한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국가가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고, 주민은 자기 스스로의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하기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 측면에서 국가 정책이 조금 더 높게 평가될 수 있는데요. 그러나 현장에서 접한 주민들의 이야기는 재생에너지를 넘어선 삶의 본질적인 고민을 담고 있었기에 이는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산업단지에서 오는 대기오염물질과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점점 약해지는 마을 기반 산업을 다시 일으켜서 지역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을까?" 주민수용성은 사회학적 정의로 [자신의 생활 주변 지역에 풍력, 태양광과 같은 대규모 신재생 설비가 들어서는 것을 수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 를 의미합니다. 주민들에게 재생에너지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주민들은 재생에너지 시설을 수용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걸까요? 마을이 처한 경제/사회/역사적 맥락 속에서 그들의 언어로 재생에너지가 어떤 수단으로 쓰임받을 수 있는지 함께 문제를 정의하는 것, 그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Insight 2 : 자발성은 '동기부여'로부터 나온다! 자발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내적/외적 동기부여가 중요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죠. 에너지내일로 시즌2를 기획하면서 제가 가진 내적 동기는 시즌1에서의 아쉬움과 여행에 대한 갈증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갖고 있는 내적동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내적 동기는 상대적이니까요. 그렇다면 외적동기를 통해 자발성을 부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유무형의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기획단이 제공한 이해관계자 리스트, 사전 조사 내용 등 관련 컨텐츠와 숙박 및 렌트를 대신하여 준비한 것은 유형의 보상에 해당되는 것이죠. 그러나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고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보상이 중요할까요?
그들에게는 유형의 보상보다 무형의 보상이 더 가치로울 것입니다. 기후변화에 관심있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과 반가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느슨한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개인이 얻는 친밀감과 유대감, 그리고 이것이 가시적인 결과 또는 구체적인 성과로 드러났다는 사실에서 오는 효능감, 이것들이 바로 동기부여로 이어지죠. 시즌2를 주도했던 멤버들이 나 자신을 내려놓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무형의 보상을 멤버 모두가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여행의 본질은 놀고 먹는 것이죠.
Insight 3 : 코로나와 기후위기 시대 속 '위기의 감수성'이란? 현재의 코로나 시대,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위기의 감수성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일시적으로 깨끗한 공기와 자연환경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 또한 줄었다는 기사를 보았죠.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산업활동이 재개되며 현재 작년의 90% 수준까지 온실가스 배출 추세가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역대급 감염병인 코로나도 기후위기를 이기지 못하네요. 친환경 여행 방법으로 텀블러, 개인수저, 개인용기 등 다회용품을 챙기고, 교통수단으로 전기차를 선택했으며, 그 지역의 로컬푸드를 소비하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물건 챙기는 걸 잊어서, 시간이 부족해서, 그 외의 가능한 대안을 찾지 못해서 등등의 이유로 저는 100% 실천하지 못했죠. 개인의 생활 속 실천에 관심있는 사람에서부터 정부에 직접 기후행동을 촉구하는 사회적 운동을 하는 사람까지, 에너지내일로 시즌2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만큼 관심의 층위도 다양했습니다. 단지 그 다양성 속에서도 현재의 기후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 하나는 똑같았죠.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하든, 어떤 놀이를 즐기든 기승전'기후'로 끝나는 현상이 벌어진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Thanks to..
기획단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직장/학업과 병행하며, 그 와중에 닥친 개인적인 어려움까지 극복하며 무려 4개월 동안 쉼없이 달려왔습니다. 에너지내일로 시즌2가 어느 때보다 의미있고 애착이 가는 이유는 함께했던 사람들 때문인데요. 비록 시즌2가 끝나고 원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같은 기억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 뜻깊습니다. 그것이 비록 인생에서 하나의 파편일지라도요. 기획단 모두 감사합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방문객」, 정현종 오랜만에 블로그를 쓰다보니 글이 많이 길어졌네요.
<미리보는 에너지내일로 시즌2 별책부록> 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글을 통해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셨음 좋겠습니다. [환경일보 르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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