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마드리드 회의장 봐야지(Voyage)
쓰고 나서 후회했다.
이걸 포스트 하나로 끝내지 못했다는 것을.
중편소설(?)처럼 쓰겠다고 선언했으니 약속은 지켜야겠지.
2일 뒤의 나, 1주일 뒤의 나, 미래의 내 자아가 알아서 하리라 믿는다. 화이팅!!
이 글을 보실 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더!
보시면서 부정확한 정보에 대한 팩트체크,
다른 관점에서의 생산적인 의견 개진,
그리고 이런 내용을 담아줬으면 좋겠다라는 제안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다시 돌아온 그곳, Real로 마드리드다.
마드리드는 반가운 도시다.
대학교 학부 졸업을 앞두고 고등학교 절친과 함께 유럽으로 여행을 갔었는데,
처음 스페인 땅에 발을 내딛었던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마드리드 중심부인 Sol 광장에서부터 숙소까지
캐리어를 거칠게 끌었던 울퉁불퉁한 도보를 잊지 못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함께 나와 친구는 처량하게 헤맸다.
우리나라와 위도는 비슷하지만 (KOR 38도 vs ESP 40도)
지중해와 대서양 난류의 영향으로 스페인은 대체적으로 온난한 기후를 띈다.
와인과 올리브가 유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11월부터 2월까지 우기라서 흐리고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비와도 젖지 않는 겨울용 코트가 필요하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지. 우산을 누가 써 감히.

운이 좋게 출국편은 마드리드 직항이었다.
아침일찍 부지런떨었던 덕분에 비상구 자리도 차지했고.
여행을 떠나는 공항에서의 설렘도 있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하겠다는 '이상'과
비행기를 타고 갈 수 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
그레타 툰베리처럼 태양광 요트를 타고 갈 수 없었다.
북극의 혹한을 뚫고 가거나, 14세기 청나라 정화의 항해로를 따라가거나,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열차 속에서 몸을 누일 용기가 부족해서.
사실 돈이 없어서 그런거지 뭐. 빙빙 둘러서 한번 말해봤다.

그리고 이날은 공교롭게도 내 생일.
행복한 건지 모르겠지만 유럽과의 시차 덕분에
내 인생 처음으로 무려 32시간 동안이나 생일을 만끽(?)할 수 있었다.
참관단 분들이 몰래 공항에서 준비한 케잌을 근사하게 즐기며
드디어 비행기에 들뜬 몸을 실었다.

2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마드리드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건 내 옆 사람과 내 마음.
생각보다 도시가 크지 않아 숙소까지 금방 편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두 가지 빼고.
1.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연락하며 whatsapp이라는 걸 처음 써봤다.
나도 이제 늙었다. 이런걸 보고 문찐이라고 하나
외국인이 많이 쓰는 메시지 어플이라고.
그 덕분에 숙소 입구에서 호스트의 whatsapp 메시지 답장만 애타게 기다렸다.
2. 우리가 '기후변화'청년모임인 것을 미리 알았는지
숙소에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우리 숙소는 3층.
캐리어와 백팩, 공용짐까지 들쳐매고 3층까지 낑낑대며 올라갔다.
아 물론 유럽의 3층은 우리나라 4층이다. 하하..
이때만큼은 여기가 남반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캐리어에 겨울옷 구겨넣기도 힘들었는데 들고 올라가기까지.

회의장 곳곳을 샅샅이 살펴봐드릴게
오후 7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하여 여독을 잠깐 풀고
근처 타파스집을 찾아 늦은 저녁을 해결했다.
다음 날 회의장으로 가는 기분좋은 상상을 하며.
작년에도 그랬지만 처음 회의장과 만나는 순간은 정말 설렌다.
탈 것에서 내려 회의장까지 걸어가는 풍경은 어떤지,
회의장 건물은 어떤 모습인지, 입구에서 가장 처음 반겨주는 사람은 누구인지,
그리고 회의장 안의 공기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적당한지.

IFEMA, 스페인어로 Institución Ferial de Madrid의 약자다.
박람회나 국제행사만을 위한 장소로 지어졌기 때문에 사실 큰 걱정은 안했다.
그럴만한 자신이 있었으니까 스페인 정부가 나섰겠지.
예상대로. 아니.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좋았던 점을 열거해보자면,
1. 지하철 역부터 회의장 이름(Feria de Madrid)이다.
지하철 역에서 회의장 건물까지 엄청 가까움.
2. 공항과도 가깝다.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과 지하철로 1~3정거장 거리.
3. 회의장 내부는 Zero-Waste Zone이었다.
분리수거할 수 있는 쓰레기통과 안내판이 종이로 만들어졌으며,
참관객들에게 나눠주는 웰컴KIT의 나무 수저세트가 인상적이었다. (COP 기간동안 CAN과 TWN이 발행하는 일간지를
zero-waste라는 이유로 허가하지 않은 UNFCCC 사무국의 조치는 의문스럽지만 말이다)

4. 공간을 구성하는 시퀀스가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들었다★
IFEMA는 총 11개의 hall로 구분되어있었는데 (따로 떨어진 hall까지 포함하면 14개)
UNFCCC COP25가 열리는 hall은 1/2/4/6/8/9/10번에 2층의 NCC까지
총 8개 hall을 사용했다.
사진에서 보이듯 COP 회의장은 크게 Green Zone과 Blue Zone으로 나뉜다.
Green Zone은 시민사회와 private sector를 위한 공간이다.
Blue Zone은 실제 협상이 이루어지는 회의장을 포함하여 당사국(Party)들의 홍보관(Pavilion), 그리고 여러 기관과 NGO 단체에서 주최하는 공식 사이드이벤트(Side Event)가 열리는 공간이다.
* 결론 : COP가 열리는 메인은 Blue Zone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안검색과 출입증을 등록하는 Hall 2를 지나면,
Side Event, Press Conference, 각종 부스 전시가 있는 Hall 4가 보인다
실제 협상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이른바 Non-stakeholder들의 무대가 펼쳐진다.
(파리협정에서 명명한 '이해[당사]자'는 Party, 즉 197개의 당사국들이지만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자'인 Non-stakeholder들의 역할도 중요해지는 추세다)

그리고 그 다음 이어지는 Hall 6와 Hall 8은 수많은 국가들의 홍보관이 위치한다.
각 국 홍보관과 정부대표단 사무실이 분리됐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홍보관과 사무실이 인접하다보니 지나다니면서
정부대표단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Hall 10은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인터넷 뉴스에서 UN사무총장이나 COP 의장 뒤에 UNFCCC 배경이 걸린 사진을 발견한다면
거의 대부분 여기에서 찍혔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실제 열띤 협상이 이뤄지는 Hall 9과 NCC(2층에 위치)와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게 왜 좋았냐고?
[Hall 4] 회의장 밖에서의 목소리가 NGO와 Press를 통해 전달되고,
[Hall 6 & 8] 기후변화 문제의 당사국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Hall 9 & 10 + NCC] UN 체제 하에서 어떤 규범과 정치외교적 수단으로 해결할지 논의하는 과정이 보였기 때문
회의장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는 물리적 운동과
점층적으로 NGO >> 국가 >> UN체제로 확대되는 스케일이
논리적 흐름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다.
알쓸신잡 2에 나온 유현준 건축가가 했던 이야기를 흥미롭게 봤던지라
더 그렇게 느꼈던 걸 수도.
곳곳에서 느껴진 배려, 하지만 그것이 전부여서는 안 되지
올해 9월 21일 유엔기후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내년 6월 P4G 정상회의를 개최하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했다.
(실제로 정부 관계자들로 구성된 준비단이 최근에 구성됐다고 함)
이번 에피소드를 마무리하며 생각해볼 점은 국제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지금과 같은 시기에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냐'는 것이다.
국가의 품격을 높임과 동시에 부가적으로 경제적 창출 효과까지..
소위 마이스 산업을 부흥시키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사회적 통념이 과연 지금의 기후위기를 극복하는데도 유효한 방법인지.
난 솔직히 모르겠다. 이번 COP의 공식 슬로건이 Time for Action인데 반해.

어찌됐든 첫 인상은 합격점.
회의를 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으니
실제로 어떤 결과가 도출되었는지 이야기해voyage.
근데 쓰고 나니 너무 길다.
더 쓰면 지루하고 잠 올꺼 같으니 다음 편부터 시작하죠.
그럼 20000
- 2019. 12. 28. Written by Min Kim
다음 편 : [Episode #2] 기후변화 협상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이전 편 : [Episode #0] COP25 프롤로그 : Are you Ready for A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