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기후변화 협상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악당 '조커'의 선한 영향력
제 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으로 이번 화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영화 '기생충'이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여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한편,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조커'의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수상소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아래는 그 중 일부.
“First I’d like to thank the Hollywood Foreign Press for recognizing and acknowledging the link between animal agriculture and climate change. It’s a bold move, making tonight plant based and it just really sends a powerful message" - Joaquin Phoenix -

그가 수상 소감에서
고기 위주 식단이 아닌 채식을 준비한 주최 측에 대한 감사와 함께
유명인들의 전용비행기 이용에 대해 문제의식을 제기했기 때문.
민중으로부터 시작되는 저항운동의 아이콘 '조커',
작품이 아닌 현실 속 그의 모습 속에서
기후위기에 맞서는 또 다른 '조커'를 보았다.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빨리 협상 좀 끝내주세요..
회의장에 도착한 게 1주차 금요일이었던 터라
실무급 회의(SBSTA51, SBI51)의 앞선 히스토리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금요일에 있었던 SBSTA 회의가 처음이었던 셈.
UNFCCC 홈페이지에 올라온 12월 7일자 2nd iteration을 확인해보니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1st iteration에서 517개, 2nd는 247개, 3rd는 425개였다.
참고로 협상 문서에 Bracket( [ ] )이 씌워져 있다는 것은 아직 '논의 중'이라는 의미.
19년 6월에 있었던 SBSTA50에서 의장이 미리미리 준비해오라는
이야기가 무색할 정도로 협상의 속도는 더뎠다.
너네 그래서 언제 끝낼래?!

실무급 회의에서 고위급 회의로 넘어가는 2주차 첫날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예정된 회의가 오후 4시에서 오후 6시로,
그리고는 다시 오후 8시로 밀렸다.
우여곡절 끝에 오후 8시 40분에 겨우 시작했지만
추가적으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집트, 사우디, 투발루의 요청에 따라
1시간 뒤에 회의를 재개한다는 SBSTA 의장의 발언을 듣고 우리는 씁쓸함만을 남긴 채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이번 COP25의 핵심 쟁점이자
파리협정 세부이행규칙의 마지막 퍼즐이었던 Article 6는
2주차 고위급 협상에서도 의견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마지막 수정 draft 전체에 Bracket을 씌우며
의욕적인 행동을 기대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셈.

1시간에 6억 5천만원짜리 회의. 일해라 휴먼.
한번 COP를 개최하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COP21를 기준으로 당시 개최 비용은 약 1억 7천만 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2,200억원.
개최기간이 2주일이니까 하루에 157억 원, 1시간에 대략 6억 5천만원 꼴이다.
계획된 시간 내에 협상이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
그 돈은 온실가스와 함께 그대로 공중에 날아가버리는 셈.
국제사회는 언제까지 당사국이 출연하여 조성된 UN예산,
그리고 미래세대에게 얼마남지 않은 그 귀한 탄소예산을 낭비할 것인가.
다음에도 언급하겠지만 COP25에서
주요 agenda의 대부분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선진-개도국 간 대립만을 확인했다는 평가와 함께 많은 비판을 받았다.
맞아.. 다들 돈 많이 썼는데 결과물이 없으니 짜증나겠지.

미래에 COP 참관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몇 가지 Tip
작년과 재작년에 COP를 참여하면서 몇 가지 결론을 내렸다.
물론 나보다 많이 간 사람들도 있고 각자 경험했던 것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첫째, 국제협상을 실제로 공부하고 직접 보고 싶다면 '1주차'에 갈 것.
1주차는 실무급 회의인 SBSTA와 SBI가 열리고
2주차는 고위급 협상인 CMP, CMA, 그리고 COP가 열리는데
고위급은 사실상 거의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
현실적으로 UNFCCC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자료만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1주차에 가기 전에 작년도 COP 협상 내용과
그 해 6월에 있었던 실무급 회의 결과는 최소한으로 공부하고 갈 것.
둘째, 사이드이벤트나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킹하고 싶다면 '2주차'에 갈 것.
보통 1주차 보다 2주차에 사람이 많다.
특히 고위급 기조 연설(High-level Segment)이 예정된
2주차 화요일부터 수요일이 제일 절정. 높으신 분들은 아래 수행원들까지 데리고 오니까.
참고로 COP 기간 동안 주요 협상 이슈과 회의장 내 다양한 소식을 전달하는
'ECO'라는 일간지가 있는데, 이 일간지를 발행하는 CAN(Climate Action Network)에서는
1주차 토요일 밤에 네트워킹 파티를 주최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정말 많은 사람이 온다고 하니 한번 가보는 것을 추천!

셋째, COP는 1년동안 기후변화 대응의 여러 강줄기들이 모여드는 바다와 같다.
그리고 기후변화가 단순히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하지만 COP가 열리는 그 현장 속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개인적 차원에서 무엇을 해야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할 수 있는지
깨닫는 것은 정말 어렵다.
매년 COP에 가는 사람들 조차도 이 고민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하니
처음 가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나 역시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기후변화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UN에서 주최하는 국제회의 경험을 쌓고 싶을텐데,
그 경험이 소중하고 엄청난 만큼 그 무게를 견디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힘들더라도 끝까지 버티길!
"One who wants to wear the crown, should bear the crown" - William Shakespeare -
마지막, COP에 며칠을 참여하든 간에 아프기 싫으면 체력관리는 필수!
실제로 함께 갔던 멤버들 중에서 나를 빼고 다른 멤버들 모두 한 번 씩 번갈아가며 감기몸살기운이 있었다.
시차와 날씨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은데
매일같이 회의장을 8~9시간씩 돌아다니는 일정에
웬만한 사람은 버티지 못한다.
가기 전에 운동 꾸준히 하고 도착한 날부터 영양제랑 건강보조제를
매일 거르지 않고 챙겨먹으니 다행히 크게 아프지 않았다.
외국 나가서 아프면 가뜩이나 서러운데
같은 팀원에게 민폐끼친다는 생각이 들면 더 힘들다.

서로 다른 세계의 만남, 공존의 해법은?
마드리드라는 같은 공간과 COP라는 같은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4개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정부대표단이 각자 자국의 이익과 국격을 두고 치열한 협상 공방을 벌이는 세계
학계/산업계/시민사회가 각자의 위치에서 협상 Agenda를 둘러싸고 Non-stakeholder로서 어떤 이슈를 선점하여 자신의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세계
기후위기로부터 당장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Strike Campaign의 세계
그리고 이것들과는 분리되어 일반 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이 펼쳐지는 세계

회의장 안을 돌아다니면서, 그리고 숙소로 다시 돌아가면서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서 느꼈던 온도차와 괴리감.
체력적인 부담보다 그 리듬과 패턴에 적응하는 것이 더 힘겨웠다.
협상장에서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기후변화 대응의 현실을 보고
그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서 그랬던 것도 있겠지.
세상은 역시 우리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기후위기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세상 속에서
'조커'의 등장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 2020. 01. 07. Written by Min Kim
다음 편 : [Episode #3] 빛바랜 COP25를 빛낸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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