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4]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책이란?
2020년의 시작, 트럼프 vs 툰베리, 그리고 신종 코로나
21일부터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일명 다보스포럼이 어제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화합하고 지속가능한 세계를 위한 이해관계자들'이라는 주제 아래
7개의 테마를 다루었고 그 중에서 가장 화두는 '기후변화'였다.

작년 9월 유엔기후정상회의에서 만난 적이 있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그레타 툰베리의 두 번째 설전을
여러 매체에서 앞다투어 보도했다.
예상했던 대로 둘은 사이좋게 덕담(?)을 주고 받았다.
새해 인사 한 번 제대로 했네.

둘이 인사하는 동안 지구 반대편에서는 심각한 사건이 펼쳐지고 있었다.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어
41명의 사망자와 1,30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불현듯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가 떠올랐다.
사스와 메르스 그리고 에볼라로 이어지는
'인수공통전염병'의 공포가 다시 시작된 건 아닌가.

영국의 의학 전문지 'Lancet'에 의하면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철 폭염이 심해지면
이로 인해 말라리아, 뎅기열 같은 감염성 질병이 확산하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점차 녹게 되면
인류가 등장한 이전 시기에 지구 상에 존재한 과거의 바이러스가
새로운 질병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한 연구결과도 얼핏 기억이 난다.
과연 이번 우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얼마나 받은 것인지 궁금증이 드는 건 나뿐인가. * Lancet 홈페이지에 소개된 기후변화로 인한 보건환경적 피해

일관된 정책은 기후변화 대응의 필수 영양소와 같다.
파리협정은 차별화된 공동의 책임,
다시 말해 선진국과 개도국의 구분은 없지만
각자의 역량에 맞추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의 책임을 분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중요한 핵심 가치다.

하지만 파리협정이 제시한 2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통한 사회 구조 혁신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에 임하는 전략 자체를 다시 살펴봐야할 수도 있다.
달리기 경기에 비유하여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보자. 이해가 쏙쏙되길 바라며.
(1) 단거리 100m 달리기와 42.195km를 뛰는 마라톤을 비교해보자.
100m 경기는 빠른 반응속도와 폭발적인 스피드가 필요한 반면,
마라톤 경기는 뛰어난 근지구력을 바탕으로
장시간 동안 일정하게 속도를 유지해야하는 종목이다.
따라서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 또한 경기 특성에 따른
적절한 트레이닝이 필요할 것이다.

(2) 기후변화 문제는 여기서 하나의 제약조건이 추가된다.
그것은 바로 'One Planet', 다른 행성에 거주한다는 대안은 없다는 것
2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설픈 전략이란 있을 수 없다.
현재의 기후변화 문제는 일반적인 스포츠 경기와 달리,
마치 원코인으로 클리어해야하는 게임과 같다.
자신의 인생이 걸린 한번뿐인 기회인데 진지하게 임하지 않을 사람은 없겠지?

(3) 현재의 기후위기 문제는 스포츠 경기로 치면 거의 난제에 가깝다
100m 경기에 필요한 근육과 마라톤 경기에 필요한 근육 모두를 요구하기 때문.
IPCC 지구온난화 특별보고서를 읽어보면
소위 회복 탄력성 측면에서 이제는 2도가 아니라 1.5도여야한다는 당위를
보고서 전체에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인류 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규모'와 '속도'의 혁신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4) 요점은 '지금 당장' 그리고 '획기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여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행위자는 기업이다.
대부분의 온실가스 배출이 산업 활동에서 이뤄지기 때문.
기업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위한 -
이상적인 방향을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화석연료에 의존하거나 탄소 다배출 업종의 경우, 기술 혁신을 통해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고 신사업으로 전환하는 시간을 확보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발생할 재무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신생기업의 경우, 비즈니스 가치 사슬에서 재생가능 에너지 공급을 확대하고 글로벌 기후변화 이니셔티브에 동참하여 시장경쟁력을 제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5) 이러한 기업의 변화는 단기간 내에 이뤄질 수 없다.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을 지속적으로 줄이기 위한
일관된 정부 정책의 시그널이 필요한 이유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책 기조가 바뀌는 데다가
다른 나라에 비해 글로벌 시장의 흐름이나 신기술 도입을 수용하기 위한
제도가 뒤늦게 따라가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다.
특히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정부의 막대한 도움을 받아 성장한
우리나라 기업들은 보면 '온실 속 화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는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일관된 정책',
'장기 저탄소 발전 전략(LEDS)'의 필요성이다.
* LEDS는 Long-term low Emission Development Strategy의 약자
우리나라의 LEDS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UNFCCC 사무국의 요청에 따라
파리협정에 참여한 모든 당사국들은 2020년까지
장기 저탄소 발전 전략을 제출해야할 의무를 가진다.
참관단이 고민했던 것은 2050년의 저탄소 사회를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과연 청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이 어떤지,
그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현재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여러 제약조건들을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
2050년 그 사회를 책임져야할 현재의 청년들이 지금 당장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굉장히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문제를 구체화시켜야했다.
그래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고생했다 내 머리.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건물/운송수단/산림 등
각 부문별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선행연구들을 진행한 사례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고 어렵사리 세계자원연구소(World Resources Institute)에서
LEDS를 연구하는 전문가 분을 찾을 수 있었다.

세미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온실가스 배출 부문이 아닌, 공동체 의식과 같은 사회문화적 자본은
정책에서 다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항상 시민의 참여가 중요하다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이것이 2050년 미래의 사회상을 그려나가는 과정 속에서
제도의 언어로는 과연 어떤 구체적인 전략이
수립되어야하는지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불가피하게 일회용품을 쓰는 상황이 오면
환경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지탄받는 것이 난처하다는 벨기에 친구,
가치 소비 트렌드 속에서 아시아 국가의 청년들은
어떤 소비 행태를 보이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 미국 친구,
급격하게 진행되는 기후변화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행동할 수 있는 젊음의 힘이 필요하다는 말레이시아 친구까지
비록 국적이 다를지라도 같은 나이대,
같은 관심사를 가져서 그런지 생각은 비슷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던
그 생경한 경험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What do we want? When do we want it?
우리나라는 작년 3월 환경부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을 발족하여
약 8개월 동안 포럼 내 논의과정을 통해
권고안을 도출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고 한다.
제대로 된 권고안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흠.

LEDS를 주제로 다양한 청년들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며
머릿 속에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2050년에 Net-Zero 달성을 전제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실효성 있는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
최소한 앞으로 내가 살아갈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권리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한테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 2020.01.26. Written by M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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